생명과학자의 삶에 깃든 생명 이야기 『생명을 보는 마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바치는, 생명과학자의 겸손한 헌사다.
김성호의 생명 사랑은 시골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싹튼다. 방학마다 외가의 논, 밭, 습지에서 뛰놀며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벗 삼은 그 시절이 지금의 김성호를 만든 뿌리와 같다.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이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을 이끌어 연세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하였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물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서남대학교 생물학과 교수가 된 뒤 본격적으로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은 생명에 특별한 시선을 두기 시작한다. 식물생리학을 전공했지만 유난히 새를 좋아하여 그들의 삶을 오래도록 지켜보며 살다 보니 ‘새 아빠’, ‘딱따구리 아빠’라는 별명이 붙었다. 새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온전히 새의 일상에 녹아들어 관찰한 결과를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 숲》《우리 새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빨간 모자를 쓴 딱따구리야》에 옮겨 담았다. 그중 《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 숲》은 새에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학교를 휴직하며 쓴 책이다. 이 외에도 《나의 생명 수업》《어여쁜 각시붕어야》《관찰한다는 것》《얘들아, 우리 관찰하며 놀자!》 등을 펴냈다. 그 모든 책에 상상을 뛰어넘는 관찰에 대한 열정과 생명을 향한 감출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다. 2018년 대학을 퇴직한 이후에는 오롯이 생태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생명체에게 바치는, 생명과학자의 겸손한 헌사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생명은 있다.
보이지 않는 생명과 다른 모든 생명이 서로 이어져 있다.
연결 고리의 어딘가에 우리 인간도 서성이고 있다.”
《생명을 보는 마음: 생명과학자의 삶에 깃든 생명 이야기》는 생명과학자이자 생태작가 김성호가 자연과 함께한 60여 년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새 아빠’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새에 빠져 살며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들을 다수 펴냈고, 관찰과 생명에 대한 철학을 담은 책들도 여러 편이지만, 이 책은 그가 온 생애를 바쳐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들의 삶과 함께했으며 머리와 몸과 마음이 정성으로 가득 차서 바라본 생명에 대한 마음의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자연과 함께하고 관찰한 자신의 온 삶을 이 책에 모두 쏟아부었다고 고백한다. 스스로는 ‘생명 이야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으나 《생명을 보는 마음》은 동물, 식물, 미생물을 아우르는 생명 전체에 대한 연구서다.
그러나 ‘연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있다. 책을 펼쳐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비록 직접 가닿지 못했으나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자연에서 뒹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자연과 함께한 인류의 유전자는 내 몸 세포 어딘가에 숨어서 어머니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자연에 대한 독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가 김성호의 글은 결국 자연에서 배운 힘이자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 그것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는 글은 그것 자체가 이미 자연이다.
동물에 대한 마음은 10개의 장에, 식물에 대한 마음은 4개의 장에, 작은 것들에 대한 마음은 3개의 장에 나누어 펼쳐진다. 가장 커다란 기준으로 생명을 세 영역으로 분류하고서 이들에 대해 기술한다. 동물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에 만나 때론 친구도 되었던 다양한 동물들을 시작으로, 새ㆍ야생조류ㆍ반려동물ㆍ멸종위기종ㆍ야생동물ㆍ동물축제 속 동물ㆍ동물원 동물ㆍ실험동물ㆍ바이러스를 망라한다. 식물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 속 식물을 시작으로 식물에 대한 학문적 정리를 하면서 왜 식물이 위기 상황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미생물에 대해서는 세균ㆍ진균ㆍ원생동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그 작은 것들과 우리가 맺는 관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때론 학문으로 접한 내용을, 때론 개인의 연구 결과를, 때론 관찰 기록의 결과를 가지고 이들 생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장을 펼쳐도 개인의 경험이 묻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제3자적 연구 자세는 없다. 그가 모든 생명을 만나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한 번이라도 겪어 보고, 관찰하고, 알기 위해 애쓰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은 내용은 이곳에 쓰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알맹이 없이는 감히 생명을 언급하지 못하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생명이든 그 생명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행동, 친구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은 본문에 수록된 사진들 중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 장의 사진 안에는 그것을 찍기까지 그 생명과 작가가 함께한 수십 년 수천 시간이 담겨 있다. 자연은 함부로 다룰 대상이거나 즐길 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수많은 수식어 이전에 이 책을 펴내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자신 안에 이미 있던 자연과 생명에 대해 경외감과 존경심을 새로이 만나는 것. 그러니 이 책은 생명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에 공감하게 만드는 통로다.
어느 곳을 펼쳐도 책은 우리를 잊었던 자연의 품으로 안내한다. 동시에 다른 것으로 여겼던 수많은 다양한 생명체를 똑같이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눈을 되찾게 한다. 그런데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평처럼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만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생명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분명한 지식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자신이 만나 온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 뒤에는 생물다양성이 망가지고 멸종위기종이 늘어 가는 현재에 대한 경고가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커다란 구호 아래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 발전과 지구 지속이 동시에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놓치지 않는다. 죽어 가는 지역경제를 되살린 성공한 동물축제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생명을 죽이는 축제를 생명을 살리는 축제로 부활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동물 실험을 인정하면서도, 동물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함께 노력할 것을 권유한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사후 처리 살처분을 어쩔 수 없는 해결책으로 인정하기보다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살처분당하는 동물의 입장, 살처분을 담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현재의 살처분 방식을 최소화하는 예방적 해결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태에 대한 교육 기능은 물론 동물에 대한 연구 기능과 종 보존 기능 어느 것 하나 수행하지 못하는 기존 동물원을 보며 슬퍼한 그는, 전주동물원 다울마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온기 없는 동물원을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동물원으로 거듭나도록 직접 나섰다. 원생동물을 직접 관찰하거나 학생들과 원생동물 관찰 실험을 하면서도, 관찰 뒤에 원생동물을 그들이 살던 곳으로 되돌려 주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애쓴다.
김성호가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생명의 경중을 인간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도 그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논하는 그의 목소리는 매섭다. 한낱 미물인 인간이 감히 위대한 생명을 논할 자격은 없지만, 생명을 향한 사랑을 노래할 자격이 있다면 작가 김성호가 아닐까 싶다. 생명이라는 다양한 음표가 과학이라는 악보 위에 펼쳐진 《생명을 보는 마음》의 노래에 오늘 귀 기울여 보기를 청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